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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휴가, 아주 이상한 여행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946
등록일2002-08-09 오전 8:13:34
  동해항으로 가는 길옆 적송 위로 백로 한 마리가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먹이를 찾아 분주히 저어대던 날개를 접고 피곤한 부리를 깃털에 숨기며 되새김질하듯 그렇게 쉬고 있었다.

나의 여름휴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머님을 모시고 팔남매의 가족이 한꺼번에 모여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랜 기간 곗돈을 부어 마련한 이번 여행은 그 기간만큼이나 긴 기다림이 더욱 우리를 설레게 했다.

처음 여행비를 준비할 때만 해도 해외여행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환난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망가졌고, 무엇보다 금강산 가는 뱃길이 열린 것이다.

금강산으로의 가족여행은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북의 감시원에게 어떤 한자 하나를 묻는 과정에서 어이없이 닫혀버린 금강산 가는 길은 좀처럼 열릴 줄 몰랐다.
예약을 취소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기다린 끝에 우리가 원래 예약했던 날짜보다 먼저 금강산은 어렵게 열렸다.

  멀리 정박해 있던 금강호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승선하면서 맞닥뜨린 유람선은 나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하였다.
금단의 땅, 그곳을 넘어가는 우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함일까.
화려한 의상을 한 러시아 댄서들이 활처럼 허리를 휘고 포즈를 취해줬고 어김없이 카메라 셔터가 눌러졌다.
사진을 찍는 일은 쇼핑만큼이나 여행 중에 큰 기쁨을 준다.

해가 지는 바다 위를 서있는지 떠나는지 모르게 육중한 금강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동해항을 소리 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갈매기들은 강화도 외포리에서처럼 순식간에 떼지어 나타났다.
금강호의 출항을 알아차린 것이다.
일제히 날아와 배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고, 우리들의 무사귀환만을 바라는 듯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많은 새들이 배웅하고 돌아간 뒤에도 어둑해지는 바다 멀리까지 따라나왔던 한 마리의 갈매기가 생각난다.
슬픈 눈매를 하고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우리의 먼 여행길을 동행했던 그 갈매기의 애절한 기원을 누가 알아차리기나 했을까.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육지의 불빛을 바라보던 선상의 바람은 어느새 여름이 가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서 피곤한 탓일까?
시원하고 조용한 금강호의 침실은 모처럼 깊은 잠을 나에게 주었다.

약간의 미동을 느끼며 깨어난 창밖으로는 북의 땅이 지척에 있었다.
조용했다.
무서웠다.
슬펐다.

아침햇살처럼 찬란한 금강산 기슭의 장전항이라고 누가 말해줬던 것도 또 그렇게 기대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왜 오랜만에 만난 조용한 친구의 누추한 모습을 봤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모습이었다.

속세를 등져버린 스님처럼 잿빛 옷을 입은 고성읍.
그 색깔 외에는 너무나 사치스러워 거부해버린 것일까?
그래서 더욱 활기가 없어 보이던 아침동산에는 혁명탑인지 주체탑인지가 덩그러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를 밤새 따라온 것일까, 멀리서 북의 경비정 한 척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몇 척의 군함은 반가운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내가 포위된 것일까.
아니면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 본 북의 땅은 금강산 발목을 수없이 씻어주던 동해의 파도가 갇혀있는 음울한 항구였다.
‘TV는 사랑을 싣고’에서처럼 그렇게 감격적으로 포옹해야 할 누구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날 옛사람을 위해서라도 서로가 잘돼 있었어야 했다.
흑백 필름 속에서 남쪽 사람들만이 컬러로 보이는 쉰들러리스트 기법처럼 기묘한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장전항의 출입국 관리소 앞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북한의 군인과 감시원들의 눈빛에서 가슴 철렁한 차가움과 분노와 적대감을 쉽게 읽어 내릴 수 있었다.

남과 북의 사람이 처음 만나는 냉랭한 장면 뒤로는 현대자동차와 트럭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그렇게 북에서 맞는 첫날 아침은 어지러웠다.
인사를 할 수도 미소를 보낼 수도 없는 그 기이한 아침의 만남은 덜 깬 잠처럼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했다.

현대자동차에서 특별 제작했다는 소형버스는 좁고 가파른 산길을 잘도 달렸다.
녹음이 우거진 만물상 가는 길에서도 매미는 서울에서처럼 시끄럽게 울고 있었으나, 곳곳의 바위 위에는 무슨 동상처럼 북의 군인들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들의 입에서는 험악한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은 무서움을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에 이르는 길 양옆으로도 철책이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동포들끼리의 모든 접촉을 차단하기 위한 것 말고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가끔씩 철조망을 뛰어넘어 오가는 손 흔들기조차도 모두가 형식적이었을 거라고 말한다면 너무 야박한 표현일까.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만가지 형태의 웅장한 산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를 안내하는 조장의 설명을 건성건성 들으며, 그 비경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짧은 시간에 안심대까지 다녀오기에는 꽤 힘든 코스였다.
하나 하나에 깃든 전설을 다 기억할 수도 없다.

출발점으로 다시 내려와 도시락을 먹던 시간은 초등학교의 소풍 때처럼 즐거웠다.
서둘러 차를 타야했다.
온정리에 있는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말로만 듣던 공연은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잠시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민 배우, 공훈 배우 등 초일류 배우들로 엄선된 교예단원들은 화려하면서도 조금의 틈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연기를 동포애의 심정으로 보여주었고, 우리 모두는 감격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대상과 금상을 수상하고 해외 순회공연도 매년 수십 차례 한다는 그들의 힘있는 연기 속에서 고구려인들의 용맹의 한끝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공연 중간에 관객 중 한 명을 무대로 불려 올려 몇 가지 묘기를 하는데 하필 내가 선택되었다.
공연장을 꽉 메운 관중들 앞에서 코미디언처럼 익살을 떠는 뚱뚱한 배우와 간단한 묘기를 어설프게 같이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어 좋았다.

갑자기 스타가 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 봐주는 아주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멀리서 관람할 때는 시종 웃음을 잃지 않는 듯 했던 그들도 막상 가까이에서 바라보니까 여간 긴장을 하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악수하면서 잡았던 땀이 밴 그 배우의 손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서로 마음을 열어 항시 다정하게 만날 수 있다면, 그런 평화가 모여 통일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꾸듯 생각했다.
그들의 수준 높은 공연과 ‘동포 여러분 또 만납시다’를 아주 고성으로 서너 차례 외쳐대던 여사회자의 목소리는 우리들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다음날은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금강산은 개미도 살지 않을 정도로 신령해서 자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오면 곧장 구름으로 자신을 가려버린다고 한다.
나로 인하여 구름이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계곡물을 끼고 도는 구룡폭포 코스의 등산은 상쾌했다.
‘멕소롱’을 풀어놓은 소주처럼 물은 옥빛을 띠고 있었고, 싸리비질을 한 등산로에는 어디하나 쓰레기가 없었다.

수만 명의 남한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남쪽의 산과는 완전히 달랐다.
교통경찰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스티커를 끊듯, 여기 저기 서있는 감시원의 눈길과 벌금 때문에 우리가 다녀간 금강산 길모퉁이가 깨끗했다면 우리들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마치 독재자의 말은 무서워서 듣고 민주주의자의 말은 듣지 않겠다고 말할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쓸어 없어질 쓰레기보다 더 무서운 이념의 붉은 표어들이 금강산의 좋은 바위들을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있었다.

여행 이튿날이어서인지 김일성 배지를 단 감시원들의 인사가 눈에 띄게 늘었고, 제2의 억류객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간단하게 대꾸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야 하는 참으로 이상한 여행을 했다.

우리 조장에게 임수경 씨의 안부를 묻던 북의 감시원에게, 지금 우리의 통일에 임수경 씨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내가 물을 수 있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여행은 일상의 억압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자유다.
여행지의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과 손을 잡고 그들의 음식을 맛보며 쇼핑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어 추억에 남기는 것이 여행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이다.

금강호 안의 승무원인 필리핀 또는 인도네시아인들과는 어설픈 그들의 언어로 짤막한 인사를 아침저녁으로 나누면서도, 알아듣지 못할 말이 하나도 없는 우리의 말로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 하나 나눌 수 없는 막힌 공간으로의 여행은 참으로 답답했다.

사진의 배경으로라도 북의 사람이 나오면 여지없이 벌금을 물리는 감시와 긴장이 이번 여행을 참으로 유별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식대로 살겠다고 한다.
우리가 또 무엇을 강요할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고 양보할 때다.

그래야 몇 십 년 전의 자기집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내려가 마당 한번 밟아보지도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