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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어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040
등록일2002-08-27 오후 11:33:11
  3, 4년 전에 떠났던 연어들이 북태평양까지 갔다가 8,000킬로미터를 거슬러 되돌아오는 남대천이 추석 귀성길 고속도로에서 문득 생각이 났다.

한번도 쉬지 않고 먼길을 달려온 연어들.
그들의 지친 지느러미 몸짓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한없이 막혀있는 고속도로 위에서 생각해 보았다.

모천회귀, 나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태양과 달을 따라 힘겨운 유영을 계속해 마침내 고향에 닿을 수 있었다.
멀리 고향마을의 불빛만 보아도 본능처럼 푸근해지는 긴 여행의 끝에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시 친정처럼 편안한 고향 땅에서 나는 독하지 않은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치어로 나갔던 연어가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남대천이 자꾸 어른거렸다.

축구 경기 결과가 궁금해 잠깐 켰던 TV 화면에는 초롱초롱 빛나리 양이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고 망연해 했었다.
죽이지는 말았어야 했다.
더구나 뱃속에는 2개월 후면 태어날 아기가 있는, 가장 생명에 대한 경외에 가득 차 있어야 할 한 임신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했다.

빛이 차단된 컴컴한 자궁 속의 적막 안에서 한없이 평화스런 잠을 자거나 꼼지락대는 태아를 초음파로 보고 있으면 가장 신성한 곳을 지켜보는 것처럼 경건해진다.

8개월의 태아를 초음파로 관찰하고 있으면 가끔씩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듯 두 팔을 힘껏 내려긋기도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거나 하품을 하는 입술과 혀를 보게 된다.

우리나라 전통 태교에는 태기가 있는 집에서는 닭도 잡지 않는 등의 금기사항이 많았다.
그만큼 태교의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임신부와 태아는 신경전달 체계가 일치하므로 엄마의 감정이 그대로 태아에게 전달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임신부는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과 꽃을 보고 좋은 책을 보면서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심지어 조선시대에 이미 태교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한 부성태교도 있었다.
‘잉태시 부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며 아기의 지각은 부친의 태교에, 형상은 모친의 태교에 달려있다’는 기록이 그 당시에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면 아버지의 금욕과 살생을 금지했고 부부간의 잠자리 시점으로 술을 마셔 정신이 혼미하거나 과식하거나 허기졌을 때, 부뚜막이나 뒷간 등의 부정한 장소는 피할 것을 권고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인가.

박빛나리 양의 여린 목숨 하나가 임신 8개월의 임신부의 손에 의해 처참하게 옥죄어질 때, 빛나리 양의 그 고통스런 순간을 생각하며 이 땅의 부모들은 얼마나 슬피 울었는가.

또 빛나리 양의 목을 조이는 순간 탯줄을 통해 전해오는 그 엄마의 긴장을 느낄 때 뱃속의 아이는 차라리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라도 했으면…….

아니면 영원히 그 자궁 안에서 나오지 않기를, 차라리 무서운 세상을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죽어버리길 태아는 바라지 않았을까.
우리는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은 술잔을 다시 들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서로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하기 전에 갑자기 창밖으로는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바치는 어른들의 참회의 눈물처럼.
우리 어렸을 때 우리를 감쪽같이 숨겨버릴 수 있었던 보리밭길에서도 문둥이가 우리의 간을 꺼내먹지 않았고, 밤길 으슥한 공동묘지 길을 지날 때도 귀신들이나 도깨비들도 우리 어린이들을 잡아가지 않았었다.

아! 시인의 탈을 쓰고 야수의 발톱처럼 무서운 손톱을 갈고 있는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비오는 고향의 밤거리를 힘없이 추적추적 걸었다.

            - 세상을 임신한 남자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