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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형아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241
등록일2002-10-11 오전 4:57:35
  환난의 책임자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남미순방을 마치고 귀로 중 미국에 들렀다.
그곳에서 장애인 복지가 향상된 나라의 원수에게 주는 루스벨트 장애인상을 수상해서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몸에 맞지 않는 무엇인가를 걸친 것처럼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정말 그 상을 받을 만큼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가 향상된 것일까. 하도 장애인 복지에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그 상을 준 것일까.

오늘 우리가 출근하면서 건넜던 횡단보도를 잠깐 생각해보자.
인도에서 차도로 들어설 때 얼마나 크게 보폭을 내딛었는지를 기억해보자.
만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휠체어로 그 횡단보도를 건넜다면 불편하지 않았을까.

어디 그뿐이겠는가.
지하철을 타야하는 많은 보행 장애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된 전철역이 지금 당장 생각나는가.

몇 년 전의 수능시험에서도 시각 장애자들은 문제지를 녹음한 테이프를 준비해주지 않아 손끝이 마비될 정도의 긴 시간동안 고역을 치렀다는데, 정말 그 상을 타는 것이 합당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오래전 뉴질랜드의 여행 중에 어느 식물원을 구경할 때였다.
조그마한 버스에서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식물원 현장교육을 위해 선생님들과 함께 내리고 있었다.
한 눈에 그 어린이들 모두가 다운증후군의 선천성 기형아임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선생님들의 손을 잡고 선인장 같은 식물을 열심히 만져보고 설명을 듣는 그 모습을 한동안 가슴 뭉클하게 지켜보았었다.

복지의 천국인 그 나라.
그래서 장애아를 둔 한국의 부모들이 편견과 불편 없이 지낼 수 있는 그 나라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아를 둔 부모로서는 자식을 위해 그런 나라로의 이민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인천의 호프집 화재가 있기 전 화성 씨랜드에서도 화재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린 자식 하나를 잃어버린 필드하키 전 국가선수는 훈장을 국가에 반납하고 남은 자식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뉴질랜드로 이민을 결행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조국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컸으면 그렇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민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임신부의 가장 큰 근심은 태아가 혹시 기형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간 기형아 발생률은 17%나 된다.
전체 신생아 70만 명 중 17%를 차지하는 기형아 가운데 10%는 자연유산 되거나 사산된다.
그래서 실제로 태어나는 기형아 수는 7%에 해당하는 5만 명 선이다.

요즘 거의 모든 산부인과에서는 태아의 크기, 위치뿐만 아니라 외형상의 기형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 임신 기간동안 내원시마다 초음파검사를 한다.

그것도 모자라 특별한 경우에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도 시행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산모의 혈액을 채취해 기형아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형아검사를 많이 한다.
산모의 혈청에서 태아알파단백질의 수치가 정상보다 높으면 신경관 결손을 가진 태아일 수 있다거나, 반대로 그 수치가 정상보다 낮으면 다운증후군 태아일수 있다는 검사방법이다.
최근에는 비결합성 에스트리올과 인융모 자극 호르몬이라는 두 가지 검사를 더하기도 한다.

이런 기형아검사 시기는 임신 16주에서 18주 사이에 하는 것이 적당하다.
그렇다면 기형아검사는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기형아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확률은 4~5%이나 양성으로 판정된 임신부 중 신경관 결손이나 다운증후군으로 최종 진단 받는 경우는 1%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임신부에게 확진이 아닌 기형아검사를 권하는가.
그것은 모든 임신부가 정확도가 높은 양수검사를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형아검사는 양수검사 등 정밀검사가 필요한 임신부를 가려내기 위한 예비검사로 필요한 것이다.

특히 산모의 나이가 35세 이상이면 태아가 기형일 확률이 현격히 높아져 곧바로 양수검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언젠가 임신부에게 기형아검사를 권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 분은 기형아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나는 내심 굉장히 불쾌했다.
쓸데없는 검사를 해서 돈이나 버는 의사로 내가 비쳐지지 않았나 해서였다.

그러나 그 산모의 대답은 참으로 의외의 것이었다.
자신은 카톨릭 신자인데,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가 기형이어도 그 생명을 유산시킬 수 없으며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형아검사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불쾌했던 나는 큰 주먹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강한 충격을 받았다.
생명의 질과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오직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경외.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노동력도 없고 주위사람들에게 고통만을 준다고 해서 치매증에 걸린 노인들을 고려장해서는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의사가 환자에게 교육해야 할 생명의 존엄성을 나는 그 산모에게서 새롭게 배웠다.

          -세상을 임신한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