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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순결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190
등록일2002-10-31 오전 5:10:42
  밤새 내린 흰눈이 온 대지를 덮어버리면 길과 밭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나무들도 자신의 모습을 숨바꼭질하듯 숨겨버린다.
이른 아침 아무도 걷지 않은 눈덮인 신작로를 걸을 때의 두려움 같은 순백의 아침을 나는 기억한다.

아무도 일어나 걷지 않은 눈 쌓인 오솔길을 걷는 행운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더구나 도심의 길거리는 우리들의 발자국이 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앞에 간 사람의 발자국이 있는 눈밭은 아무런 떨림도 없이 그저 저벅저벅 걸어 갈 수 있다.

한웅큼의 청결한 눈을 두려움 없이 먹었던 우리들 유년의 백설은 이제 없고 그때 동화 속의 백설공주 또한 없다.
유독한 분진들이 몸을 숨기고 내리는 눈을 우산 속에서라도 피해야 한다.
때묻지 않은 눈처럼 결혼식장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눈시리게 하얗다.

그러나 이제는 그 순결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강요하지도 않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아직도 순결을 서약하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 순결학과가 생겨서 말썽이다.

작가 전여옥 씨는 몇 년 전에 <여성이여, 느껴라 탐험하라>는 책을 냈다.
작가는 책에서 이 처녀성의 이데올로기에 가히 도전적으로 말하고 있다.

‘순결’-깨끗하다? 그렇다면 한 번 남자와 자고 난 여자는 다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이야기가 된다.
설사 강간을 당했다 하더라도 왜 단 한 번의 섹스로 여자는 불결한 몸이 된다는 이야기인가? 라고 묻고 있다.
‘처녀’, ‘처녀림’, ‘처녀막’ 이런 것들이 진정한 순결을 의미하는가.

질 입구에 자리한 처녀막의 파열 여부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을 옥죄는 처녀성의 이데올로기는 지극히 남성 논리라고 몰아붙인다.
순결은 중요치 않으며, 적어도 순결을 강요하려면 남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고 화를 내면서 말하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나는 처녀도 아니고 순결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정말로 아름답고 깨끗한 몸과 정신을 지녔다.
그것은 자기애로 지킨 진정한 순결이다.
나, 셀 수 없는 섹스를 했으나 순결하다.’고 끝을 맺고 있다.

이제는 자신의 순결을 잃었다고 자살하는 못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순결하지 않다고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는 바보 또한 없을 것이다.
한 남자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따뜻한 손을 잡고 뜨거운 키스를 한 번 했다고 그 여자는 순결하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랑하는 남자와 아름답고 충만한 섹스를 했다면 더 깨끗하고 순결한 사랑을 얻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육체적 순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진정 자신의 이념과 영혼의 순결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옷로비 사건에서는 영혼이 순결하지 않은 몇몇 여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면서까지 거짓말을 해대고 있어 특검제가 도입됐다.

또한 정치판에서 순결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우리들은 철새 정치인이라고 시처럼 아름다운 새 이름을 붙여서 자못 그럴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세상을 임신한 남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