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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수간호사

작성자명최준렬
조회수1314
등록일2002-11-15 오전 4:36:44
  지금 그 수간호사가 살아 있다면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은성한 송년회에서 성장을 하고 만나,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들을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술잔을 부딪히면서 웃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들어했던 레지던트 1년차 때에 그 병원은 아주 거대한 건물을 지어 이사를 했고 수간호사는 처음으로 그곳 분만실을 책임지고 부임해왔었다.

밤낮없이 이루어지는 분만과 수술에 매일같이 녹초가 되어 있었고 이틀에 한번씩 그것도 밤에만 비번이 주어져 간신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혹독한 레지던트 1년차 때에 나는 그 수간호사를 만났다.

그때 나는 조금의 시간만 있으면 잠을 자거나 쉬고 싶어했다.
밤에 잠을 자고 있을 때 분만실이나 응급실에서 수시로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는 정말 고문이었다.

이제 막 개원한 분만실의 초대 수간호사로 나타난 그녀는 나와 같은 나이 또래로 상대하기가 그렇게 편한 성격은 아니었다.
또 분만실의 기강과 규율을 잡고 전통을 세우려는 수간호사와 나는 사사건건 부딪히곤 했다.

특히 수련 병원에서 수련의와 간호사의 관계는 아주 아슬아슬한 긴장 관계가 계속된다.

병원생활을 오래 했던 간호사들일수록 인턴, 레지던트를 길들이려고 하기도 해 때로는 수련의와 간호사 집단간의 싸움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 관계가 애증이 수시로 교차하는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한다.
그 힘의 평형을 유지하던 관계가 어떤 일로 깨어지면 아주 험한 말들이 튀어나오고 서로 마주치기가 어색한 일들도 있다.

그 수간호사와 레지던트 1년차였던 나는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그것은 나와 수간호사의 문제를 떠나, 나 다음의 후배와 그리고 분만실의 분위기가 그렇게 영원히 굳어져버릴 것처럼 사뭇 역사의식(?)을 가지고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냉전을 1년 내내 하고 있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곤 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상대방의 의중을 탐지하려고 부단히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었다.

한번은 무슨 일로 크게 언성을 높이면서 분만실에서 싸우고 있는데 과장님이 회진차 들어오셨다.
서로는 금방 표정을 바꿔 아무렇지도 않게 과장님을 대했던 일을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 수간호사는 그때 애가 하나 있는 엄마이기도 했다.
내가 레지던트 4년차 때 수간호사는 두 번째 아기를 임신했고 하필 내 당직 때 산통이 있어 분만실에 입원을 했다.
내 바로 아래 연차 여선생님이 분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수시로 연락이 왔다.

분만시 소리를 질러대는 산모들을 매일같이 야단치던 수간호사도 자신의 산통에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제왕절개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두 번째 분만이니까 조금 더 참아보자면서 시간을 끌다가 정상분만을 했다.

몇 달 후 나는 전문의 시험공부를 위해 모교로 갔고 그때 수간호사는 분만실 간호사끼리 준비했다며 넥타이핀을 나에게 선물했다.

그 뒤에 나는 개업을 했고, 얼마 있지 않아 수간호사가 난소암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그 난소암의 종류는 굉장히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잎새가 풋풋한 난화분을 들고 토요일 오후에 수간호사의 병실을 찾았다.
몹시 반가워했고 자신의 옆에 서 있던 남편에게 인사를 시켜 주었다.

그때 수간호사의 표정은 내가 사가지고 간 난의 잎새처럼 싱싱했었고, 그 표정은 기적처럼 지독한 암과 싸워 이겨내리라는 믿음을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 믿음도 잠시, 얼마 있지 않아 수간호사는 이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떠났다.
항시 그렇게 강인하게만 나에게 비쳐졌던 수간호사는 두 아이와 남편을 남겨 놓고 너무 이른 나이에 가족 곁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랫배에서 혹이 잡히는 것 이외에는 전혀 다른 증상이 없었고 혹시나 해서 초음파검사를 하게 되었고 대수롭지 않게 수술에 임했으나 수술실에서는 의외의 일이 벌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때 수간호사가 화해의 선물처럼 주었던 예쁜 넥타이핀이 지금도 있고, 그 선물을 볼 때마다 그녀가 남기고 간 남편과 어린 두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가장 힘든 시간을 같이 보냈던 그 시절이 떠오르고, 그때 별로 중요치 않았던 일로 다투었던 일들이 부끄럽기조차 하다.

가끔씩, 그 둘째 애를 분만할 당시 제왕절개수술을 해달라고 애원할 때 수술을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때 제왕절개수술을 하면서 양측 난소를 직접 확인하고 초기에 수술과 치료를 했다면, 지금도 연말 모임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우리가 많이도 싸웠던 일들을 아주 어렸을 때의 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 세상을 임신한 남자 - 중에서